호남 지역의 풍부한 재생에너지가 정밀한 전력이 필요한 반도체 공장(팹)에 불안정할 것이라는 우려는 전력 계통의 작동 방식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진짜 쟁점은 전력의 양적 부족이 아니라,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계통의 ‘단단함’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있다.
■ ‘흐리면 정전’은 오해… 전국이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전력망
반도체 팹은 특정 지역의 태양광 발전설비에 직접 코드를 꽂아 가동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이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전력망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날씨가 흐려지더라도 정전이 발생하지 않는다. 실제로 호남은 전기가 모자란 곳이 아니라 오히려 전력 생산량이 소비량을 크게 초과하는 자립 지역이다.
■ 진짜 문제는 송전망 정체와 전력 계통의 ‘무름’ 현상
현재 호남 송전망의 정체는 외부에서 전기가 들어오는 길이 아니라, 넘쳐나는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낼 ‘나가는 길’이 꽉 막혔기 때문이다. 호남에 대규모 소비처인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면 오히려 북상해야 할 송전량이 줄어 전력망 정체를 해소하는 데 기여한다. 다만 태양광·풍력 등 인버터 기반 전원이 밀집하면 외부 충격 시 전압이 흔들리는 약점이 발생하는데, 미세한 전압 변동에도 장비를 통째로 버려야 하는 반도체 공장에는 이것이 실질적인 걸림돌이다.
■ 보완 설비 구축을 통해 지역 전력망도 함께 ‘단단하게’ 체질 개선
이러한 기술적 문제는 계통에 회전 관성을 보태는 동기조상기, 그리드포밍(GFM) 인버터, 가스발전기 등의 보완 장치를 조합해 해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도입되는 이 설비들이 결과적으로 기존 호남 전력망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계통의 무름’과 ‘출력 제한’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점이다.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송변전소 신설 등의 과제는 어디서나 겪는 문제일 뿐 호남만의 결격 사유가 될 수 없다.
전력 계통 전문가는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로 양적 기반을 다지고 동기조상기와 전통 발전기 등으로 질적 단단함을 보완하는 최적의 조합을 이뤄낸다면, 반도체 공장 유치가 단순히 전력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낙후된 지역 전력망 자체를 이전보다 훨씬 튼튼하게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의 불일치로 막대한 송전 비용을 치르고 있는 대한민국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가 넘쳐나는 호남 지역으로의 반도체 공장 분산 배치는 국가 전력 계통의 안정성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열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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